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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사지'로 추정되는 대가람 터 발견
작성자 김○○ 작성일 2013-03-21 18:47:47 조회수 500
'보국사지'로 추정되는 대가람 터 발견

소백산에 보국사지로 추정되는 옛 부지가 새로 발견됐다. 

'보국사'는 삼국시대 죽령 일대의 대찰. 이 사찰 터를 놓고 그동안 학계에서는 현 죽령옛길 옆에 있는 장육불상 터가 바로 그 보국사지라고 주장해왔는데, 이번에 보국사지로 추정되는 옛 부지가 새로 발견됨으로서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보국사지 추정 부지가 발견된 곳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제2연화봉 밑의 '용부원리 산 12번지' 일대. 지난 3월 9일, 소백문화연구회원(회장 윤수경·단양 거주)들이 답사 발굴했다. 이 사찰 터는 두 곳, 하나는 400여 평이고, 바로 아래 또 하나의 부지는 2000여 평인데, 이번 답사에서 30여m의 석축과 많은 양의 기와장이 발견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기도 한 윤수경 회장은 "보국사지는 죽령산 중턱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산기슭에 위치한 약 400평 정도의 사지로서 신라가 고구려를 침공하여 국토를 확장할 때 치도위민(治道爲民)하기 위하여 이 절을 창건했다"는 문화유적총람의 내용과 딱 맞는 위치와 규모라고 설명했다.

우선 그 위치가 "연화봉으로 오르는 산기슭"이라는 점과, 면적이 "400평 정도"라는 점이 똑 같다고 한다. 반면 지금의 보국사지라고 불리는 장육불상 터는 그 위치가 연화봉으로 오르는 산기슭도 아니며, 면적도 400여 평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근거로는 장육불상 터와 새로 발견된 보국사지는 모두 한 계곡 상에 위치하고, 그 거리도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으로 보아, 이 두 곳은 '산지형 가람 배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길쭉한 하나의 통합된 사찰부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본찰을 계곡 최상부에 두고 반석굴인 장육불상을 상징적으로 맨 앞 죽령대로(죽령옛길)에 둠으로써 어떤 목적을 달성코자 했을 거란다.

다시 말해, 신라가 소백산 너머 고구려 땅의 주민들에게 신라의 불교사상과 화랑정신을 통해 종교적·사상적 통일을 모색하기 위한 정신적 지주의 역할로서 보국사를 창건했으며, 장육불상은 최전방의 군사, 문물, 행정을 총괄하기 위해 교통량이 많은 죽령대로(죽령옛길)로 내려와 상징적으로 세운 석불이라는 것이다.

윤 회장은 1984년 11월 "지표조사 결과 '장육불상 터'가 9세기 무렵의 보국사지로 확인됐다"라고 한 문화재관리국의 발표는 잘못된 것으로, 앞으로 성의 있는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당시의 발표를 뒤집는 지역주민들의 증언도 나왔다. 용부원2리의 최장수 노인 김광수(1922년생)·차학실(1938년생) 부부는 '이번에 새로 발견된 보국사지는 바로 자신들이 살던 마을 터'였다고 한다. 이 부부는 자신들을 보국사 마을에서 살다가 내려온 15가구 중, 타지로 떠나지 않은 유일한 가족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마을 이름 자체가 '보국사'였다고 한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보국사에서 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렇듯 이 고장 주민들에게는 예로부터 이곳이 '보국사 터'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 '장육불상 터'를 '보국사지'라고 표기한 안내 팻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들 부부는 주장한다.

참고로 1968년 11월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 정부에서는 산간지방의 주민들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곳 보국사마을 주민들을 모두 산 밑으로 이주시켰다(1969년). 또 이 보국사마을은 한국전쟁 때에도 한 차례 폐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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